잡기

사목 제192호 / 2020.8.1.

임탁 2020. 8. 25. 15:32

배 나온 게 죄인가요?

 그분의 인생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저는 아이쿱 생협 조합원 가입에 대해 제안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수락하지는 않고 일주일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그 제과점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고심 끝에 아이쿱 생협 조합원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축하기념으로 커피를 함께 마시게 되었는데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배가 전혀 나오지 않으셨네요!" 그래서 저는 "네, 과식하지도 않는 편이고 학교를 걸어서 출퇴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가 나오지 않는 모양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저는 종교가 없는 무종교인입니다만, 배가 나온 종교인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부, 목사, 승려를 포함한 모든 종교인은 나름대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도인(道人)인데 배가 나왔다는 것은 절제력이 상당히 부족해 보이거든요. 그래서 가끔 배가 나온 목사님이나 스님이 제 가게에 방문하여 자신의 교회에 다녀라, 자신의 절에 다니라고 권유하면 저는 속으로 '배 나온 주제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종교를 선전하네, 먼저 자기 뱃살이나 빼고 오시지!'라며 그분들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이용옥 요한 보스코 신부 / 인천교구 / 사목 제192호, 3면)

당연히 배가 나온 게 죄는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자기 관리를 못해서 식탐 때문에 배가 나올 수도 있지만,
누군가와 어울리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아는 신부님이 판교에 있을 때, 판교 신자들 중에는 뚱뚱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자기관리가 가능한 것이고, 그러기 위한 시간과 재력이 충분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코 못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시간과 재력이 부족할 때, 비만이 되기가 쉽다.
(참고: https://www.yna.co.kr/view/AKR20141107154000017)
그런데 신부님이 자기 관리가 가능한 사람들만 만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면, 뭐든 잘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고급음식 먹는 법은 모를 수 있어도, 라면은 기쁘게 먹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 라면을 맛없게 먹는 게 더 어려운 일인가?

야훼 이레와 에벤 에제르와 단상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어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나이가 들수록 어지간한 사람들은 말이 많아집니다. 또한 요즘 세태로 보면 노후 걱정에 씀씀이 또한 인색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말이 많아진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술값 내는 것을 즐겨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입니다. 언젠가부터 나이를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잘 늙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신부로, 좋은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성경의 장면이 있습니다.
      (...)
 신부 생활에 경력이라는 것이 쌓이면서 어느덧 '내 방식', '내 스타일'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많은 경험을 통해 나온 듯한 이런 모습은 종종 다른 동료 사목자들의 활동을 쉽게 판단하고 폄하하기까지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아브라함과 사무엘, 그리고 성경의 위대한 성조들과 예언자들이 그러하였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순명의 태도로 복음을 전하라 요청하십니다. 제대로 된 목소리조차도 내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의 음성에 귀 기울여, 그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세상에 전하는 태도를 가지라 요청하십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느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잘 늙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 / 수원교구 / 사목 제192호, 4면)  

맞는 말씀이다. 잘 늙어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