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감상

200919 아이유 X 유스케

임탁 2020. 9. 19. 01:37

  보고 싶은 프로그램들만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새로운 것, 혹은 관심 없는 것들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어쩌다 알게 된 것들은 찾아서라도 보는 편인데, 오늘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아이유가 콘서트처럼 무대를 준비했다는 기사를 보고, 한번 볼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금요일 저녁은 아무래도 체력이 없어서 볼까말까하다가 TV를 켜보니, 안 볼 수가 없었다. 피곤하지만 집중하게 되는, 간만의 프로그램이었다.

  우선 믿고 보는 유스케랄까, 사운드가 굉장히 좋았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주 맛있게 비벼진 비빔밥 같달까, 귀가 호강한다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이유의 노래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양성형 가수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데뷔했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인데,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하나의 기준과 같은 미모랄까... 보여지기에 어쩔 수 없는 관리가 수반되겠지만, 비쥬얼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런 면에서 아이유는 부족함이 없다.

  중간중간 토크쇼가 있는데, 아이유의 평소 목소리는 생각보다 저음이다. 아주 오래전에 던파걸로 활동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사실 낯설지 않은 목소리다. 충분히 포장된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게 나에겐 솔직함으로 보인다. 12년. 연예계에서 많은 일들을 겪고도 남을 시간이다. 자기를 포장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그렇게 성장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연예인들도 인간인지라 자기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가 기사로 기사의 댓글로 남겨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평범한 정신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나에 대한 약간의 안 좋은 소문만 들려도 며칠 밤을 못 자고 멍 때려도 그 생각만 드는데, 전국민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이라면? 상상조차 끔찍하다. 그 끔찍한 시간을 이겨낸 이들이 정상에 서는 게 아닐까. 그리고 계속해서 그 시간들을 그 돌뿌리들을 이겨내야 하는 게 연예인의 숙명이랄까.

  그래서 아이유의 노랫말들을 보면 저건 진심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녀의 감정이 가감없이 전해진다. 가수보단 뮤지컬 배우의 노래를 좋아하게 된 지 꽤 되었는데, 그건 감정을 담은 연기가 기술적 완벽함보다 더 낫다는 개인적인 취향 덕분이다. 그런데 오늘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 생각을 고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유의 노래는, 자기의 이야기이다. 싱어송라이터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장점. 그래서 그녀의 노래가 사뭇 다르게 들려왔다. 차에서 수없이 들었던 노래들이 다르게 들려왔다. 이건 쉬이 잊혀질 수 없는 경험이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한편 왜 이런 시간이 주어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연예인과 팬의 관계는 접촉점이 없다는 게 기본 전제다. 우리가 연예인 누구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직접 보아서라기보다는 대부분은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고, 좋아하게 되고, 그래서 대면하고 싶어지는 것이 아닐가? 대면이 불가능한 이때에, 정상의 연예인들은 다시 비대면으로 팬들과 만난다. 그런데 이때의 비대면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펼쳐진다. 전에는 비대면으로 자주 보여도 보이지 않았던 이가, 이제는 굉장한 거인이 되어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전개는, 그동안 팬들과의 대면 상황 속에서 그녀가 쌓아온 경험들이 체험들이 느낌들이 바탕에 있기에 가능했다. 혼신을 다해 공연을 마쳤고, 거기서 나는 감동을 받았다.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곡들이었지만, 역시나 아이유는 팬에 대한 존경을 곡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두 곡, 너랑 나와 좋은 날은, 프로그램 컨셉이기도 하지만, 지금 아이유를 있게 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 노래 덕분에 지금의 이 자리가,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추측하건대, 그 노래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때가 분명히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그녀는 그 노래를 놓아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노래를 통해 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현한다. 마지막 곡이 좋은 날인 것은 난 100% 그런 이유라고 확신한다.

  정상에 선 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그들의 머리 뒤에서 빛나는 영광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또 계속 거기에 있기 위해서는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않으면 안 된다던 존경하는 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늘 좋은 공연을 보고 투박하게 글을 써본다. 나중에 이 글을 다시 들여다 볼 시간이 생긴다면, 다시 수정하겠지만, 여하튼 오늘 공연은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