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죽음에 대하여
1. 도대체 죽음을 당하지 앟고 영원히 사는 사람이 누구인가?
아들아, 정말 아무도 없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경험으로 보아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라.
그러므로 네가 비록 사제라 할지라도, 신들 중에 하나라 할지라도,
지존하신 분의 아들 중의 하나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처럼 죽는다.
또한 그 날과 시간과 형상도 모른다.
아들아, 죽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자가 말을 타고 너에게 급히 와서 너를 죽은 자들 사이에 있게 할 것이다.
너는 그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아직 멀었거니 하겠지만 잠깐 사이에 그와 헤어질 것이다!
이제 곧 너는 짓밟힐 것이다.
그때 온 세상을 다 얻었다고 할지라도 네 영혼을 구하지 못했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2. 네게 종말이 왔다고 말탄 사람이 무섭게 소리지르는 것을 듣게 될 때
오, 너의 눈은 어떤 모양으로 바라볼 것인가?
그때에는 그렇게 긴 세월이 한낱 잠깐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음을 알게 될 것이 아닌가?
그때에는 풍요로움, 능력, 영광과 지위, 쾌락과 욕망이 너에게 아주 헛되고 쓸데없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때에는 재물에 네 희망을 둔 네 자신이 바보였다는 것을 고백할 것이다.
그 이유는 잠시 후에 죽음이 다가와서 이 모든 것을 다 빼앗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 네게 슬기로웠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때에는 그렇게 많은 은총을 저버리고 그렇게 많은 거룩한 영감을 도외시한 것을 한탄할 것이다.
그때에는 네 성소를 키우지 않고 또한 더 높은 완덕의 정상에 이르려고 하지 않은 것을 원통히 여길 것이다.
그때에는 네 죄가 일어나서 네 눈앞에서 너를 대적하는 큰 군대가 될 것이니, 너에게는 큰 두려움이 될 것이다.
그때에는 네가 행한 정의에 혼동이 와서
사랑이나 미움에 적합한 자인지 분간하지 못하여, 아주 심한 공포에 쌓일 것이다.
그때에는 네 생애에 대한 걱정만 하지 네 양들을 얼마나 열심히 돌보았는지에 대하여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때에는 네 모든 행동이 네게 해롭게 나타날 것이다.
올바르고 선한 것을 다른 것보다 소홀히 하였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만사에 있어서 육체의 욕망, 눈의 욕망, 생활의 교만, 본성의 경향에 따라서만 살고,
완덕에는 아주 소홀히 하며 살은 것이 나타날 것이다.
3. 아들아, 그때에는 과식과 과도한 옷가지들과 사치스러운 가구를 탐하며 한가한 날을 보낸 것이 드러날 것이다.
기도의 부족, 자선의 부족, 특권의 남용, 쓸데없는 대화에 몰두한 일이 드러날 것이다.
야망, 질투, 배신의 미움, 신심 행위의 나태, 고백의 소홀, 미사 봉헌의 게으름이 드러날 것이다.
가르치지 않아 무식한 많은 양들, 찾지 않아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 꾸짖지 않은 많은 죄인들,
용기를 북돋아 주지 않은 많은 겁쟁이들이 네 머리에 마치 주마등처럼 떠오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가 일으켜 주지 않아서 넘어지고, 얼마나 많은 이가 치료해주지 않아서 병들어 있고,
그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선을 궐하고 악을 행하였는지.
그때에 얼마나 불쌍한 자라고 말할 것인가?
아들아, 지금 말하라. 그러면 안전할 것이다.
4. 말하라, 오, 죽음아! 하고. 네 심판은 공평 정대하다.
그때에 깨달을 것을 지금 깨달으라.
그때에 행할 것을 지금 행하라. 살면서 내 집을 꾸밈같이, 죽으면서 꾸미도록 하라.
이제부터 모든 악을 힘을 다하여 피하고, 이 무서운 시간에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말아라.
시간이 있을 때 선을 행하고, 씨를 뿌리고, 추수하고, 모으라.
하느님께서 도지(賭地)를 셈하러 오셔서 기쁨을 가지고 당신의 충실한 종으로 네 몫을 가지고 나타나시도록 말이다.
5. 아들아, 참으로 너는 네가 태어났을 때 얼굴을 비추어 본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
그는 자기를 보고 가서는 자기가 어떻게 생긴 자인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
그것은 한두 번 죽음에 대한 이 유익한 생각을 하고, 완덕에 나아갈 서약을 했다가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이다.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항상 죽을 준비를 하라.
먼 장래가 아니라, 지금 행동으로 말이다.
자기 죽음의 시간을 항상 눈 앞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내 성인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즉,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여 자기 죽음을 생각하였다.
곧 어떤 사람은 죽은 자들의 뼈를 보고, 어떤 사람은 무덤을 보고, 어떤 사람은 관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묵상하여라.
6. 사제인 너에게는 죽음을 자주 묵상하기 위한 특별한 표지가 필요치 않다.
너에게 죽음의 징조가 없을지라도 어느 날 잠깐 사이에 닥칠 것이다.
그것은 병자성사를 줄 때, 죽은 자의 사망 기록을 할 때, 죽은 자의 성무일도를 염할 때이다.
만일 종이 울린다면, 장례식을 알리는 신호일 것이다.
성당에 들어간다면 비문(碑文)과 무덤을 볼 것이다.
성무일도를 보려고 책을 펴면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들이 나올 것이다.
미사를 드리게 된다면 죽은 이들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어디서나 죽음을 생각하도록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까닭은 다른 누구보다도 네 지위가 높고 위험하기에 네 종말을 늘 생각하는 것이 필요함으로
성무를 행할 때에 네 죽음을 항상 깊이 생각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이다.
7. 그러므로 비록 슬픈 일이지만 마음의 눈을 감지 말고, 물리치지 말며 네 죽음을 생각하여라.
죽음이란 말에 마음의 귀를 막지 말라.
오히려 주의 깊게 듣고, 받아들여, 그 말들을 네 품에 간직하여,
네 육체가 나에게 대한 경외심에 머물게 하라.
아들아, 죽은 자들 가운데서 항상 걸으면서,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잦은 위험에는
거의 습관적으로 무감각하게 된 사제들이 우둔하고 지혜롭지 못한 자들이 아니냐?
죽음은 어디든지 따라다니나 결코 죽지 아니할 것처럼 살고,
세상의 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처럼 생각한다.
이미 앓고 있고 죽어 가고 있으면서
죽음을 착실히 준비하라고 하는 친구의 충고를 거의 믿지 않는구나.
집을 정리하라.
너는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아, 그들의 생활이 그러한 만큼 죽음도 그러하지 않겠느냐?
육체를 따라 사는 자는 거의 예외 없이 준비치 아니한 때 갑자기 죽음이 온다.
아들아, 네가 떠난다면 네 종말의 두려움이나 그 슬픔도 없을 것이다.
매일 생각으로 죽어라.
그러면 바오로와 같이 죽음에서 구원될 때, 그와 같이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