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감상

러블리 본즈(The Lovely Bones, 2009. 2. 25., 피터 잭슨 감독)

임탁 2010. 2. 18. 01:31
스포일러 있으니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보지 마세요! ^^
그리고 스크롤 압박이네요. 죄송해요.


우리나라 포스터


DVD표지


공식 홈페이지의 시놉시스를 캡쳐했다. (그림판으로 ;;)

 이 영화는 14살에 죽은 소녀의 관점에서 사후 세계를, 그리고 현실 세계를 다룬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감독은 판타지적 요소로 사후 세계를 표현했다. 그리고 종종 사람들이 느끼는 이미 돌아가신 분들과의 접촉, 가령 꿈이라든지 순간순간 설명할 수 없는 느낌들을 감독 나름대로 표현하며, 빙의(憑依)까지도 다룬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죽은 자의 한이었다. 죽은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바로 그러한 심리적인 측면을 감독이 부드럽게 표현해냈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였지만, 그것을 잘 이용했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이상의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다 적극적인 삶으로 초대한다. 영화 내내 보았겠지만, 수지의 가족들은 수지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수지에게 때가 왔을 때에도, 수지는 가족들 때문에 오히려 갈 수가 없었다. 차라리 가족들이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살아갔다면 수지가 더 빨리 떠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수지의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시신조차 찾지 못했으니 얼마나 애통했겠느냐마는.

 짧은 생을 마치고 떠나는 수지는 자신이 없는 세상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한다. 항상 행복하게 살라고. 이에 대해 굳이 연관을 짓자면,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기고, 산 이들은 제 할 일을 하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그렇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그것도 행복하게. 그것이 바로 세상을 떠난 이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아닐런지?

 오늘 성당에 상이 났는데, 왠지 이 영화를 보게 된 무의식적인 의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내게 있어 특별하지는 않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좀 더 친근하게 생각하고 느끼고 다가가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배운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종말론 수업을 통해 내가 배운 유일한 것은, 바로 삶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이다. 그것의 바탕은 인간이 죽음에 정향되어 있다는 사실이며, 그 사실은 누구 하나 배제하고 않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순간을 마지막처럼 충실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수지가 항상 행복하게 살라고 말한 것처럼.



※ 그런데 왜 'Lovely Bones'가 '아름다운 시들'이라고 번역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혹시 아시는 분 계신가요? 좀 알려주세요.




 이 장면은, 미국은 쓰레기를 이렇게 버리기도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담고자 한 것인데, 알고보니 바로 이곳이 수지의 몸이 묻히게 되는 곳이었다.


 수지의 몸은 여기에 있었다.


 용감한 수지의 동생 린지. 그녀는 하비의 집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낸다. 가장 살 떨리는 장면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하비는 수지의 몸을 이곳에 버리고 만다.


 하비의 최후.


(추측컨대) 하비에 의해 살해된 소녀들이 모두 모였을 때.


마지막 장면. 이 장면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