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의 정의관
아모스는 남유다 출신이지만, 북이스라엘이 정치·경제·종교적으로 가장 번창했던 기원전 8세기 중엽에 수도 사마리아의 성소 베텔을 중심으로 예언활동을 펼친다. ‘정의의 예언자’라고도 불리는 아모스의 ‘법과 정의’를 살펴보는데 있어, 아모스서 5장이 가장 중요한 본문 가운데 하나이다. 그중에서도 예언자의 정의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사법적 불의(5, 7. 10-12. 16-17)와 경신생활과 정의(5, 4-6. 14-15. 21-27)을 중점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법적 불의에서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성문 앞에서의 불의’이다. 예언자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저주의 외침으로 시작한다. 7절에서 법을 고통과 죽음의 상징인 독약으로, 정의를 땅에 내던져 짓밟는 이들을 단죄한다. 10절, 12절에서 예언자는 성문에서 자행되는 불의를 고발한다. 성문은 공공장소로서 상거래, 토론, 공적 모임, 정보교환, 사법적 토론 등이 이루어졌다. 특히 법정 역할로서의 성문은 약자가 사회의 불의로부터 자신을 변호할 수 있고 자신을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성문에서 이루어져야 할 정상적인 절차가 훼손되고 있으며, 따라서 약자는 자신의 권리를 찾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언자는 12절에서 성문에서 자행되던 행태를 요약한다 : 의인 학대, 뇌물 갈취, 약자의 소송 기각.
둘째는 ‘하느님의 개입’이다. 11절에서와 같이, 상기한 불의 앞에서 예언자는 이를 응징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개입하실 것을 예고한다. 하지만 그 개입은,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법과 정의를 침범한 자는 누구든지 응벌하신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하느님 친히 당신 백성 가운데 약자를 위한 권리의 수호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사법권의 부패는 약자가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희망마저 박탈하므로, 한 사회의 가장 중대한 혼란 상태로 해석된다. 따라서 예언자에게 있어서 백성이 법과 정의를 존중하며 실천해나가야 할 구체적 장소는 무엇보다도 성문이다. 특히 약자를 위한 소송에서는 철저하게 정의가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의의 열매인 “법”은 극한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정의의 가능성을 제공하며, 법의 원천인 “정의”는 법이 법으로서의 기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따라서 법과 정의 존중만이 의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으며, 비로소 현실적 선린관계를 향유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언자는 구원을 위한 이 정의의 유일한 원천이 하느님이심을 결코 잊지 않는다.
다음 경신생활과 정의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주님을 찾아라’이다. 첫 단락은 4절의 ‘나를 찾아라. 그러면 살리라.’로 시작하며, 6절에서 ‘나’는 ‘주님’으로 보다 분명해진다. 아모스의 청중들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정립을 확신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을 열심히 방문해 왔다. 이것만으로도 주님을 찾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단지 경신행위 그 자체에 만족하여 자신의 안전과 영익만을 갈구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예언자는 이어지는 14-15절에서 선을 찾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 앞에서 공정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곧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15절과 같이, 하느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원하시는 바를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표출되는 행위인 것이다. 다시 말해 경신례 안에서도 역시 법과 정의가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둘째는 ‘경신행위 안에서의 법과 정의’이다. 예언자는 21-22절에서 언급되는 당대 이스라엘의 종교의식에 대한 주님의 부정적 반응을 밝히며 철저히 거부한다. 그리고 그분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 경신례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법과 정의를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또한 예언자는 경신례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가시적 위선적인 경신행위를 거부한 것이다. 인간 중심으로 변모한 당대의 경신례는 더 이상 하느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이 오염된 경신례를 정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 파리가톨릭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