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

명동성당에서 일어난 기습시위(20170322)에 관한 생각 정리

임탁 2017. 3. 31. 14:37

지난 2017년 주교회의 춘계정기총회 중 교황선출 기념미사(3월 22일)가 시작된 직후,

대구 희망원 사태 처리를 촉구하는 대책위의 기습시위가 있었다.

(관련 기사 :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15)


다음은 관련 기사의 내용 중 일부이다.



우선 미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나 계획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래는 페이스북 전장연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영상이다.


영상은 미사가 시작된 직후의 장면이다. 이 영상이 올라오고 난 뒤, 페이스북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다.



나는 한 사람의 신자로서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선 전제하는 것은, 대구 희망원 사태를 만든 가톨릭교회에 1차적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만큼은 부인해서도 안 되고, 부인할 수도 없다.

두 번째, 활동가들은 미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비신자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페이스북을 하다가 이런 글을 접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minam316/posts/1897241707211779)



예수님 자신이 유다 사회의 난입자였고, 난입자들의 벗이었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분의 성전 정화 사건은 논외로 두자. 그것을 난입으로 여길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오늘날의 난입을 정당화 시켜줄 순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우리는 모든 난입을 허용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인용한 글의 중간 부분이다.



그럼 나는 지금 인륜과 가치의 문제를 형식과 절차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유혹에 빠진 것일까?

더 생각해 볼 문제다.

예수님께서 난입자들을 받아주셨을지언정, 그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예외적인 경우도 포용해주셨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주교님들께서 그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해 볼멘 소리를 할 순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분들에 대한 비난이 될 수는 없다. 그분들이 예수님은 아니기에.

어쩌면 그분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일 수 있다.

우리는 나 스스로가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이 되어주어야지 다른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왜 저들은 저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가?

한국가톨릭교회가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보아야 한다.

관련 기사를 보면, 희망원 대책위에서 요구한 것은 다음과 같다.




4가지가 언급되었는데, 하나씩 생각해보고 싶다.


1. 희망원 사태에 대한 천주교의 사과

- "대구시민과 대구교구민들에게 드리는 말씀 (대구대교구 교구알림 게시판)"으로는 부족한 것일까?

- 대책위가 원하는 것은, 대구대교구만의 사과가 아니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차원의 사과를 원하는 것인가?

   물론 주교회의 의장이 도의적인 사과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구대교구장의 사과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2. 진상규명

- 이것은 공문으로 요청할 일이 아니라, 대구대교구장이 사과문에서 말한 대로 진행을 잘 하고 있는지를 감시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또 희망원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기관을 압박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시민단체의 역할이라고 배웠다.


3. 책임자 처벌

-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있지만, 어쨌든 책임자 신부가 구속되었다.

- 대구 희망원 전 총괄원장 구속... 가톨릭 신부 '최초' (경북일보 2017. 1. 17.)

-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검찰에서 조사 중이다. 이미 자체적으로 자정작업을 할 수 없는 사안으로 판단받고, 국가에서 조사 중인 것이다.

   이에 따라서 처벌 받을 사람들은 그 누구라도 처벌 받게 될 것이다. 검찰에 대한 비판이 많은 때지만, 검찰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서 대구대교구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4.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사퇴

- 조환길 대주교를 사퇴시키는 압박은, 당연하게도 그가 있는 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사회용어로 직위 해제를 시키는 것은 교황님의 권위이지, 주교회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주교직은 선출직도 아니고, 진급 자리도 아니다. 어쨌든 교황대사를 통해 교황님께서 선출한 사람이다.

   우리가 물러나라고 해서 물러날 수도 없고, 사퇴를 한다 해도 교황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알기론 그렇다.



그래도 그들이 미사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여지는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왜 주교님들 중에 그래도 열려 있는 분이라고 평가받는 강우일 주교님은 왜 가만히 계셨을까?

그분이라도 내려 와서 그들을 보듬어주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왜? 그분의 이유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분께서 침묵을 지킨 것이 하나의 표현이라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미사를 시위의 장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사는 더 이상 미사로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사실 우리는 끊임없이 유혹을 받는다. 미사를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것.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한 가지 예를 들고 싶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던 신부님께서 강정마을에서 미사를 집전하셨고, 그 와중에 투입된 경찰의 전투화에 성체가 밟히는 일이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주해군기지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가 아니다.

성체를 지켜야 할 성직자가 그래도 되는지 묻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성체를 밟은 경찰에겐 죄가 없다.

어쩌면 그가 그런 독성죄를 지을 수도 있는 여지를 준 사제에게 더 큰 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신자에게 가장 소중한 성체가 그렇게 쉽게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었다면, 미사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 또한 미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는 미사에 대한 오해이다. 미사는 저항의 도구가 될 수 없다.

미사는 용서의 자리여야 하고 그래서 평화의 나눔이어야 한다.

아직까진 정부에서도 성당 안에서 거행되는 미사를 방해한 적은 없다.

물론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님께서는 미사를 거행하시다가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

우리들 중 누구도 그런 상황이 오기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겠지만.


그래서 나의 결론은 미사만큼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안에 어떤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을지라도.

차라리 주교회의 춘계정기총회가 열리는 그 장소로 난입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박수를 쳐주었을 것이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사람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시스템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구축하고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스템 내에 헛점이 있다면 밝혀내고 그것이 고쳐서 잘 돌아가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