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오해한다.
애타게 찾고 간절히 청했지만, 와주지 않으셨고 들어주지 않으셨다고.
그러나 때와 방법은 오로지 하느님의 권한이다.
우리는 감히 그것을 침범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정한 '때'로 미리 하느님의 한계를 그어놓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법칙 아래로 하느님의 활동을 제한해두었다.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참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하느님은 그 고통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시고 눈물을 흘리신다.
그 어떤 신이 미천한 인간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가?
한낱 먼지에 불과한 피조물의 고통에 함께 하는 신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는 아파하며 눈물 흘리신다.
사람들의 무죄한 고통을 모른 척 하지 않으시고,
그 표징으로 때를 놓쳐 부패한 이를 되살리셨다.
하느님의 영광은 이렇게 드러났다.
사람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시며 눈물 흘리심으로써.
함께 아파하는 이는 고통받고 있는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못하신다.
그 어떤 무죄한 고통이든지 그 속에서 우리를 구해내신다.
심지어 우리의 악으로 인한 고통마저도 아파하신다.
우리의 하느님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과 희망으로 그저 기다리는 일이다.
그분의 침묵 앞에서, 그분의 무능함 앞에서, 그분의 무관심 앞에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8)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분 앞으로 나가 진리와 진실을 마주하면 될 뿐이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코린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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