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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묵상

2017년 12월 24일 대림 제4주일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얼마 전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었다.

그때 친척누나가 그런 말을 했다.

자기는 다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지금이 좋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모여있으면 종종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겠느냐고.

나는 늘 거기에 단서를 다는 편이다.

과거로 돌아가되, 지금까지의 기억은 사라져야만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그 인생은 진짜 인생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내가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것들을 되돌리고 싶어서 과거로 돌아가길 바라는 듯 하다.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진짜 돌아간 것이 아니다.

이미 나는 그때의 나가 될 수 없으므로. 어린이가 어린이이지 못한 것이다. 청년이 청년이지 못하고 장년인 것이다.


우리가 한 번 내린 선택은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하나의 선택을 내릴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

어쩌면 그 선택이 내 인생 전체를 끌고 나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선택들이 주로 어린 나이에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삶은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무엇이다.

그런 어린 나이에 삶을 좌지우지할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이가 복음에 나온다.

바로 마리아다.

좋게 봐도 오늘날의 중학생 정도인 그녀가 저 대답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어린 나이에 결심했을 것이다. 이 선택을 평생 간직하겠노라고.


그래, 하느님의 천사가 전하는 부름에 답하는 그녀는, 섣부르게도 자신의 삶을 걸고 말했다.

그게 가당한 일인가. 결코 가당치 않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런 결심은 그녀가 어렸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경험이 풍부해질수록 도전이란 것은 점점 우리와 소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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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른 이야기지만,

어쩌면 순수하다는 것은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말이 아닐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었을 때, 그들은 지식을 획득했다.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경험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덕분에 그들은 순수함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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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이 선택한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무슨 오해를 받더라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바로 그게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

저렇게 대답하는 건 오늘날 아주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와 같은 대답을 살아가는 건 오늘날 너무너무 어려운 일인 것만 같다.

어렵다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어려워도 끊임없이 도전해보는 것이다.

삶의 선택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택하고 결심한 것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