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등나무를 손질했다.
몇년 동안 관리하지 못해 악마의 머리카락처럼 자란 모습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 60-70% 정도의 등나무 밑둥을 베어 놓았다.
그러면 싹 말라서 티가 날 줄 알았는데, 웬걸...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그냥 전지가위를 들고 열심히 잘랐다.
그런데 자르다 보니까 티가 났다.
어떤 가지는 얇은데도 잘 잘리지 않은 반면, 어떤 가지는 좀 두꺼워도 잘 잘렸던 것이다.
겉보기에는 전혀 다르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차이는 역시, 뿌리와 연결되어 있느냐 여부였다.
뿌리로부터 잘린 줄기는 두꺼워도 잘 잘렸고
뿌리와 연결된 줄기는 얇아도 잘 잘리지 않았다.
아하, 겉만 봐서는 모르는 거구나.
그 줄기가, 그 가지가 뿌리에 잘 붙어있는지 아닌지는.
외부로부터의 충격, 위협, 시련 등(등나무의 경우에는 전지작업)과 같은 것들이 왔을 때에야 드러나게 되는 거구나.
우리도 겉으로만 보기에는 누군가가 예수님께 잘 매달려 있는 가지인지 알지 못한다.
더구나 등나무도 아직 잎을 내지 않은 걸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줄기에선가 잎이 났다면 바로 알아차렸겠지. 하지만 아직 잎이 나지 않았으므로, 알지 못했다.
당연히 우리도 아직 열매맺지 않았기에 예수님께 달려있는 가지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건 끝까지 가봐야 안다.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나무에 붙어있는 수밖에 없다.
붙어있어야 시련이든 역경이든 유혹이든 이겨낼 수 있다.
내가 강한 줄기, 가지여서가 아니라 뿌리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붙어서 버티다 보면, 하느님 보시기에 풍성하고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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