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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묵상

하느님 관상 - De videndo Deo -

하느님 관상 - De videndo Deo - 서간집 147편

1. 하느님의 충실한 여종, 파올리나, 당신의 질문에 답하기로 한 약속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은 육신의 눈으로 불가견적인 하느님을 뵐 수 있는지 상세히 설명해주기를 청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거룩한 열망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도 당신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약속을 지키는데 지체했다면 이는 많은 과중한 업무 때문입니다. 당신의 요청은 진지하고 오랜 숙고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중요한 질문은 커다란 어려움을 수반합니다. 이는 말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데 따른 어려움이 아니라, 다른 개연적인 의견에도 잘 납득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입니다. 미룰 때보다 일에 착수할 때 주님께서 도와주시다는 희망을 갖고, 미루었던 모든 것을 종결지을 생각입니다. 이런 종류의 찾음에서는 대화의 방법보다 사는 방법이 더 유익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마태 21,29 참조)을 배운 이들은 다른 것을 읽고 듣는 것보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 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대화가 전혀 이롭지 않고 유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준 사람들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때, 나머지는 성장을 주신 분에게 맡겼습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준 사람들도 그분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2. 내적 인간(2코린 4,16 참조)에 대한 말씀을 이해해봅시다.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반면에 외적 인간은 금욕의 혹독함, 질병, 사고, 세월의 무게로 파괴되고 쇠약해집니다. 이런 재앙은 지금 건강이 좋고 장수를 누리는 이들에게도 필연적으로 내려집니다. 따라서 창조하신 분의 모습대로(콜로 3,10 참조) 하느님에 대한 참지식으로 새로워지는 당신 영혼의 영(spiritum mentis tuae)을 드높이려 애쓰십시오. 바로 그곳에서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에 거주하십니다(에페 3,17 참조). 여기서는 유다인도 이방인도, 종도 주인도, 남자도 여자도 구별이 없습니다(갈라 3,28). 비록 죽어야 할 몸이 당신을 떠나가기 시작할지라도 당신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늙음이나 감수해야 할 세월의 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당신에게 말하는 중요한 것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권위로 지금까지 말할 것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성경의 규범에 비추어 보십시오. 혹은 내적으로 당신을 비추는 진리가 당신을 이해시키도록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3. 예를 들어, 우리에게 부과된 같은 주제에서 내가 이끌어내려는 것보다 더 분명하게 당신을 선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육적인 눈으로 태양을 보듯이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것, 원하는 것, 찾는 것, 알거나 모르는 것을 내적인 직감으로 알듯이 하느님을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편지를 읽는 당신도 육적인 눈으로 태양을 보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당신은 태양이 떠오른 시각에 그리고 태양이 나타난 곳까지 당신의 시력이 미치는 곳에 서있다면 태양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찾기를 원하는 것 등은 영적인(정신적인) 눈으로만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이 어떤 모습인지 모릅니다. 저는 이를 위해 육적인 눈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앞서 언급한 여러 형태의 보는 것에서 시력을 확장시키는데 장애가 되는 공간적인 간격이 없음을 잘 압니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삶, 의지, 탐구, 지식, 무지 등을 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인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선이나 형태나 색이나 기타 어떤 명료함이나 확실함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봅니다. 당신은 자신 안에서 이것을 더욱 단순하게 관상합니다(conspicias). 하지만 우리는 천상적이나 지상적인 몸을 보듯이 육적인 눈으로 지금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경우처럼 영적인 눈으로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우리가 하느님을 볼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라는 성경 말씀을 통해 영감을 받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는 의심을 허락하지 않는 경건함으로 신적 권위에 대한 많은 다른 증언들에 근거한 것입니다.

4. 우선 두 종류의 보는 것이 있음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육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색, 소음, 냄새, 맛, 더위 등 육적인 감각으로 보거나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곧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입니다. 그리고 오직 영적인(정신적인)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곧 생명, 의지, 생각, 기억, 지성, 지식, 믿음 등 오직 내적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당신에게 제시한 이 모든 설명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 이는 당신이 이것을 믿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저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공표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육적인 감각이나 영적인 눈으로도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진실 아니면 거짓 중의 하나입니다. 당신이 이를 인정하든 거부하든 자유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성경의 권위 곧 교회가 규범적이라고 일컫는 것들에 근거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믿음의 내용에 추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서적이나 다른 증거에 기인하는 내용들은 당신의 애착 정도에 따라 믿게도 하고 믿지 않게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