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분리수거는 무조건 해야한다고 알고 있었다.
분리수거는 절대로 종량제 봉투에 버려서는 안 된다. 하나의 철칙이었다.
그것은 법으로 제재받을 수준의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번 분리수거 대란으로 인해서 오랜 시간 지켜온 나의 철칙이 무너지고 말았다.
사실 합리적으로 생각해봤어야 할 문제였다.
나는 그저 분리수거에 있어서 뛰어난 기술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분리수거 품목에 음식물이 남아있어도 재활용 과정에서 그것이 아주 쉽고 간단하게 처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런 물건을 그대로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연에 대한 죄, 법률(?)을 위반하는 죄.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신박한 기술 따윈 없었고, 사람이 일일이 가려내야만 했고 씻어내야만 했다.
물론 나중에 재활용 가능 폐기물은 세척해서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해오고는 있었지만,
또 급할 때는 그냥 분리수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분리수거가 아니었다니.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이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사실 아주 작은 물건을 사도 쓰레기는 발생한다.
쓰레기통을 비운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가득 차는 것을 보며,
인간의 존재양식에 대해 비참함을 느끼기도 했다.
왜 쓰레기 없이 살 수 없는 것인가.
그것을 상쇄시켜주는 것이 재활용 분리수거였으나, 그것이 무너졌으니 역시 방법은 하나뿐이다.
쓰레기가 덜 발생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갑자기 내가 변할 일도 없겠지만, 불편함을 감수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동안 너무 쉽게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을 사용했는데, 그것부터 줄여야겠다.
사실 그러려고 텀블러도 샀던 것인데.
그런데 누군가는 세척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그냥 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 비용으로만 따지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또 하나의 믿음을 가져본다.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버리면 그것들은 오래오래 골칫덩이가 되지만, 물은 그것들보다는 덜할 것이라고.
슬프다.
왜 기술의 발전은 지구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지.
그 기술이란 인간 삶의 진보를 위한 것인데도 말이다.
인간 삶의 진보가 이뤄지고는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비용이 높다. 너무너무 비싸다.
바꿔 말하자면, 너무너무 쓰레기가 많이 발생한다.
누군가 그랬다. 중국사람들이 차를 한 대씩만 끌어도 지구의 대기오염은 급속도로 심각해질 것이라고.
참된 진보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생겼다.
모두가 차를 끌고 다니는게 진보인가?
그것이 진보라고 한다면, 현재의 자동차는 답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개발, 지속가능한 발전. 이것이 답이 되어야 한다.
연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삶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경유차의 질소산화물을 차치하더라도 타이어와 브래이크패드에서 많은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수소연료차가 모든 걸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름모를 연구원들은 미세먼지가 생기지 않는 타이어와 패드 등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의 죄책감을 덜어주었으면 한다.
경유차를 탈 수밖에 없고, 많은 주행거리를 달려야만 하는 나를 위해서.
나는 나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실천들을 찾아보아야 겠다.
정말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한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 위해서는, 가방을 매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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